UPDATED. 2019-12-12 17:38 (목)
[최희영의 고려아리랑②]타슈켄트에서 만난 사람 … 고려인 통역사 이잔나 씨
상태바
[최희영의 고려아리랑②]타슈켄트에서 만난 사람 … 고려인 통역사 이잔나 씨
  • KORTOUR IN UZBEK
  • 승인 2019.11.02 15: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우즈벡 국빈방문 때 가수 양희은 씨 통역한 보람 가장 뿌듯 … “통역은 평생 공부하는 직업”
▲고려인 통역사 이잔나 씨는 양국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통역해야 될 분야도 갈수록 넓어지고 있어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야 된다며 “평생 학생 신분”이라고 웃었다. Ⓒ최희영
▲고려인 통역사 이잔나 씨는 양국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통역해야 될 분야도 갈수록 넓어지고 있어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야 된다며 “평생 학생 신분”이라고 웃었다. Ⓒ최희영

 

2019년 6월 16일부터 22일까지 타슈켄트엘 다녀왔다.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국빈방문 특별취재 이후 두 달 만에 다시 떠난 현지 취재다. 타슈켄트는 한 주 내내 영상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이었다. 고려인 통역사 이잔나 씨도 이상 기온이 계속돼 이러다가 타슈켄트에서도 바나나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번 취재는 영화산업과 관련된 일이었다. 사실 한국 영화계에서 우즈베키스탄 내 고려인 청년들을 위해 멋진 기획을 하나 하고 있다. 그와 관련해 기자도 뭔가 중요한 역할 하나를 맡고 있다. 이번 우즈베키스탄 방문은 그와 관련된 일 때문이었다. 행사는 7월 22일부터 타슈켄트 ‘한국문화예술의집’에서 3주가량 진행될 예정이다.

양국 간 취재를 하는데 있어 통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동안 우즈베키스탄 현지 취재를 하면서 통역 때문에 여러 차례 애를 먹은 적이 있다. ‘고가형 지하철’을 ‘육교형 지하철’로 통역해 웃은 적도 있다. 타슈켄트에는 최근에야 지상철 공사가 시작됐다. 그동안은 지하 선로로만 운행했다. 그러다 보니 지상 선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통역사가 ‘육교 선로’로 통역해 양측을 이어준다는 게 외려 막히도록 만들었다.

▲이잔나 씨가 평생 동안 알리셰르 나보이 시인에 관한 연구를 해온 우즈베키스탄 석학 한 사람을 만나 통역 중인 모습. Ⓒ최희영
▲이잔나 씨가 평생 동안 알리셰르 나보이 시인에 관한 연구를 해온 우즈베키스탄 석학 한 사람을 만나 통역 중인 모습. Ⓒ최희영

 

“통역은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한국어에는 특히 외래어와 신조어가 많아 한국드라마나 영화를 자주 보지 않으면 언어 트랜드를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양국 간 교류가 다양해지면서 공부할 영역이 아주 넓어졌습니다. 3년 전만 해도 관광 통역과 비즈니스 통역이 거의 모든 것이었는데, 이제는 의료 영역은 물론 교육, 스포츠, 문화, 심지어는 뇌과학 분야까지 모든 영역을 꿰고 있어야 통역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잔나 씨는 고려인 4세로, 1976년생이다. 타지키스탄에 살다 고등학교 때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해 와서 2000년 타슈켄트 경제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기업에 근무하면서 처음 통역 업무를 보게 됐다. 회계사 자격증까지 갖고 있다 보니 경제용어는 누구보다 해박했다. 그러나 문화 예술 영역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이번만 해도 알리셰르 나보이에 대한 통역을 준비하며 그에 대한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재밌어요. 솔직히 우즈베키스탄 국민으로 살면서도 이렇게 대단한 작가 분이 있었는지 이름만 들었지 깊이 있게 몰랐어요. 그분은 한국의 세종대왕 같은 분이지요. ‘우즈베키스탄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분인데 우즈베키스탄어로 작품을 쓴 최초의 작가였고 그분 때문에 우즈베크어가 폭넓게 보급됐다고 해요.”

7월 17일 그녀와 함께 아프라시압 고속열차를 타고 사마르칸트 영화 촬영장을 찾았다. 현장에서는 알리셰르 나보이를 소재로 한 영화 촬영이 한창이었다. 이잔나 씨가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했다. 그 순간 그들은 기자보다 더 많은 질문을 쏟아내 주객이 전도됐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단연 화제였고, ‘그 작품을 봤느냐’부터 ‘봉준호를 만나 봤느냐’, ‘그 작품이 그렇게 대단한 상을 받게 된 이유가 뭐라고 보느냐’ 등등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순간 당황했다. 나의 말을 그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이잔나 씨의 표정을 살피니 “아무 걱정 마세요, 예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인터넷 뒤져 웬만한 건 다 알고 왔어요”하는 밝은 모습이다. 덕분에 한국영화를 많이 홍보했다. 그리고 그녀 덕분에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알리셰르 나보이 문학에 대해서도 많이 공부하는 시간이 됐다.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국빈방문 때 가수 양희은 씨가 동포간담회 축하공연을 했다. 당시 이잔나 씨가 양희은 씨의 타슈켄트 모든 일정을 챙기며 통역을 담당했다. Ⓒ최희영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국빈방문 때 가수 양희은 씨가 동포간담회 축하공연을 했다. 당시 이잔나 씨가 양희은 씨의 타슈켄트 모든 일정을 챙기며 통역을 담당했다. Ⓒ최희영

 

통역은 이처럼 양국 교류의 가장 중추적인 징검다리다. 그런데 고려인들이 이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 퍽 다행이다. 그들은 이원적 DNA를 갖고 있다. 하나는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민족적 DNA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을 키워준 생래적 DNA다. 그러다보니 균형 감각이 탁월하다. 절대로 어느 한 편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님이 우즈베키스탄 오셨을 때 동포 간담회가 있었는데 가수 양희은 씨가 여기 와서 축하공연을 했어요. 행사 전날 도착하셨는데, 그때부터 행사 마치고 돌아가는 날까지 통역을 담당했어요. 한국에서 대단히 유명하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어쩌면 그렇게 따뜻하게 대해 주시던지 정말 감사했어요.”

이잔나 씨는 양희은 씨와 만난 보람이 그동안의 통역 경험 중 가장 기분 좋은 기억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리고 지난 3월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책을 쓴 한국작가와 우즈베키스탄 석학의 만남을 주선했는데, 두 사람의 잔잔하면서도 깊은 대화가 아주 인상적이라 그날 통역 또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타슈켄트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한국인과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대학 졸업 뒤 한국기업에 다니면서 현지에 파견돼 있던 남자와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하게 됐다. 회사가 어려워져 그 남자가 그만두게 됐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여행이나 다녀오겠다며 짐 좀 잠깐 맡아 달라고 했던 게 평생 썩 괜찮은 짐(?)으로 남게 됐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 축구 시합하면 어디를 응원하세요?
내가 물었다.

“안 봐요.”
그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2019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제1회 타슈켄트국제도서전이 열렸다. 이잔나 씨는 이 도서전에서도 한국에서 온 출판사들의 통역을 맡아 저작권 수출 계약에 많은 도움을 줬다. 행사 전날 ‘한국관’ 부스 설치를 마치고 그 앞에서 기념 촬영한 모습. 왼쪽은 기자 모습이다. Ⓒ최희영
▲우즈베키스탄에서는 2019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제1회 타슈켄트국제도서전이 열렸다. 이잔나 씨는 이 도서전에서도 한국에서 온 출판사들의 통역을 맡아 저작권 수출 계약에 많은 도움을 줬다. 행사 전날 ‘한국관’ 부스 설치를 마치고 그 앞에서 기념 촬영한 모습. 왼쪽은 기자 모습이다. Ⓒ최희영

 

그녀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어디 나갈 자격이 없다고 한사코 거절했다. 7월 22일부터 한 달 동안 있으면서 잘 보이고 싶어 쓰는 인터뷰 기사라고 했다. 둘의 ‘밀당’(밀고 당김)이 재밌는지 곁에 앉았던 그의 아들 신지명(13세)이 밝게 웃어 우리도 따라 웃으며 헤어졌다. 7월 13일 밤 타슈켄트국제공항에는 귀국길에 오르는 한국인 승객들로 북적댔다. 이잔나 씨의 요즘 분주함을 방증하는 풍경이라 더 유심히 지켜보게 됐다.(계속)

 

*이 기사는 최희영 작가가 인터넷언론 <미디어피아>에 연재 중인 내용임. 기사 전재를 허락해 준 최희영 작가님과 미디어피아 측에 감사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